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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여행정보

마닐라 관광지, 역사 유적지. 인트라무로스?

by Giver-Life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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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닐라의 역사


마닐라는 역사가 짧은 도시가 아니며, 역사적 기록은 짧지만 스페인이 오기 전 중세에도 툰도 왕국의 수도가 위치했기 때문에 시가지가 형성된 도시입니다. 이후 16세기 스페인의 지배하에 많은 유럽, 특히 이베리아 스타일의 건물이 지어졌습니다. 그러나 도시의 많은 부분이 태평양 전쟁으로 파괴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상당한 수의 역사적 유물도 파괴되었으며, 파시그 강의 왼쪽 제방에 있는 인트라무로스 내부에만 성벽, 요새, 산 어거스틴 대성당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마닐라는 역사가 짧은 도시는 아니지만 필리핀 특유의 문화를 느끼기에 부족하다는 평이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세부가 고급 리조트들을 필두로 휴양과 관광을 겸할 수 있는 필리핀 최초의 도시로 관광객들을 더 끌어모으고 있습니다.  세부는, 스페인이 세부를 점령한 1565년부터 1571년까지 약 7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지 본부 역할을 했으며, 마닐라는 주권을 스페인에 넘겨준 1571년부터 1898년까지 약 328년 동안 스페인의 식민본부, 필리핀 도독령이 위치했던 곳이라 역사적 중요성과 유적지의 질과 양은 비교 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또한 태평양 전쟁 당시 파괴되지 않은 유적지도 많이있어 인트라무로스 성벽 안에 남아 있는 산 어거스틴 대성당은 필리핀 바로크 양식의 교회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대표 관광지, 인트라무로스

 

인트라무로스(Intramuros)는 필리핀 수도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으로 16세기에 스페인 사람들이 Pasig 강 남쪽에 건설했습니다. 이름은 말 그대로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 또는 요새를 의미하는 스페인어로 "성벽 내"로 번역되며 두껍고 높은 벽과 해자로 둘러싸인 구조를 나타냅니다. 스페인 시대에 Intramuros는 마닐라 자체로 생각되었습니다. 마닐라출입국관리국이 들어서면서 이민관련 업무를 확인하고 싶은 외국인들이 많이 찾는 곳입니다.

 

인트라무로스의 위치는 원래 말레이 무슬림의 대규모 거주 지역인 "Maynilad"라고 명명된 Datu, Raja 또는 Sultan이라는 군주에 의해 통치되었습니다. 그 이름은 "may nilad (nirad가 자라는 곳)"에서 파생되었으며 nila (또는 nila)는 Pasig 강 저지대를 따라 다양한 군락에서 자라는 별 모양의 꽃 식물입니다. Pasig 강과 만에 위치한 Mainirad의 전략적 위치는 지역 Terogje가 중국, 보르네오 및 인도네시아의 중국인 및 이슬람 상인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 문명과 무역하기에 이상적이었습니다. Mainirad는 또한 유럽인들이 처음으로 Luzon에 오기 전에 이 지역을 통치한 지역 족장들의 권력 중심지였습니다.


스페인 시대


1564년 Miguel López de Legazpi가 이끄는 정복자들은 누에바 스페인(멕시코)을 떠나 이듬해인 1565년 2월 13일 세부 섬에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필리핀에 최초의 스페인 식민지를 건설했습니다. 마닐라의 풍부한 자원의 원주민으로부터 로페즈 데 레가즈미는 그의 부관 마르틴 데 고이티와 후안 데 사르세도를 비사야 산맥의 북부 지역을 탐험하도록 보냈습니다.

1570년에 스페인 사람들은 루손 섬에 도착했습니다. 무슬림과 스페인인 간의 분쟁으로 인해 주도권을 잡고 이 지역에 영구적인 정착지를 세우기 전에 Miguel López de Legazpi의 병사들은 주민들과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듬해인 1571년에 원주민이 전투에서 승리했고 로페즈 데 레가즈미는 세 족장인 Raja Schiele 및 Raja Rakandura Raja Matanda와 평화 조약을 체결하여 스페인 사람들을 마닐라로 강제 이주시켰습니다.

1571년 6월 24일 마닐라의 풍부한 자원과 위치를 이용하여 Miguel López de Legazpi는 이 지역을 필리핀의 스페인 식민지의 수도로 선언했습니다. 스페인 왕은 마닐라의 문장과 Ciudad Insignie y Siempre Leal(유명하고 영원히 충실한 도시)이라는 칭호를 López de Legazpi와 그의 부하들이 달성한 새로운 정복에 수여했습니다. 마닐라의 도시 계획은 필리핀의 초대 총독이 된 Lopez de Legazmi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요새, 도로, 교회, 학교를 건설했습니다. Intramuros Plan은 1573년 7월 3일 San Lorenzo에서 발표된 스페인 왕 Philip II의 Royal Decree를 기반으로 합니다. 개념은 별 모양의 요새 또는 이탈리아 스타일의 요새(수많은 삼각형 능선 요새와 해자로 구성됨)를 기반으로 합니다. 평평한 구조로 서로를 덮도록 특별히 설계된) 벽은 8개의 두꺼운 돌로 만들어졌으며 6.7m의 높은 벽으로 올라갔습니다. 그것은 헥타르의 면적에서 만들어집니다. 그것은 중국 해적의 공격으로부터 정부 센터를 보호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인트라무로스는 1606년에 완공되어 필리핀이 스페인 식민지였을 때 스페인의 정치, 군사, 종교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Intramuros에는 일부 로마 가톨릭 교회(예: 마닐라 대성당 및 산 아구스틴 교회), 수도원 및 교회 운영 학교(예: 산토 토마스 대학교, 산 후안 데 레토란 대학교, 아테네 대학교 Municiparu de Manila(현재 Ate))가 있습니다. Neo de Manila 대학교)). 그들은 일반적으로 Dominicans, Saint Augustine, Franciscans 및 Jesuits의 명령에 의해 운영되었습니다. 필리핀 총독의 공동 저자인 총독의 궁전은 원래 인트라무로스에 있었는데 공식적으로 마라카날 궁전이나 산티아고 요새로 이전되었습니다. 스페인인과 메스티조만이 정치에 관여할 수 있었고 성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살 수 있었습니다. 스페인 관리들은 기독교인 중국인의 출입을 허용했지만 내부에 거주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외국 및 중국 혈통은 벽으로 보호되지 않은 거리 밖에서 살았습니다.



 


 

 

저도 마닐라에 관광을 하러 갔던 당시에 인트라무로스 투어를 신청해서 돌아본 경험이 있는데, 여기가 필리핀인지 아니면 유럽의 어느 유적지인지 모를만큼 유럽식 건축들이 많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필리핀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아니면 아이들 교육용으로 어느곳에 갈지 찾으시는 분이라면 인트라무로스 투어를 해보심이 어떨지 조심스레 추천드려봅니다. 놀러만 다니는것도 좋지만 관광지, 특히 역사적 유적지를 찾게 된다면 그만큼 뿌듯하고 보람된 여행이 있을까요?

 

여행 가시기 전에 미리 공부하셔서 마닐라 역사 유적지 인트라무로스를 찾아보시는거 추천드립니다.

마닐라 역사 유적지 관광지. 인트라무로스! 전기차나 아니면 마차로 투어가 가능했던것 같은데 아마 코로나 락다운이 풀린 지금, 다시 활기를 되찾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예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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